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태평양 전쟁(남아메리카) (문단 편집) == 배경 == [[나폴레옹 전쟁]] 뒤 혼란에 빠진 [[스페인]]의 라틴 아메리카 식민지가 일제히 독립하고 신생 독립국들이 우후죽순 쏟아지면서 중남아메리카 정세는 혼란에 빠졌다. 당연히 제대로 된 중앙집권국가 형성도 어려웠고,[* [[콜롬비아]], [[베네수엘라]], [[에콰도르]]가 뭉쳐 독립한 [[그란 콜롬비아|대콜롬비아 공화국]]과 [[온두라스]], [[엘살바도르]], [[과테말라]], [[니카라과]], [[코스타리카]] 등 중미 소국 5개국들이 통합해 결성한 [[중앙아메리카 연방 공화국]]도 금방 무너졌다.] 그 와중에 명확한 경계선이 없는 관계로 국가간 영토 분쟁도 빈발했다. 즉, 언제든지 무력충돌이 일어날 수 있었다. 직접적인 원인은 볼리비아의 태평양 연안 지역인 [[안토파가스타]](Antofagasta) 문제였다. 이곳은 칠레-볼리비아 간 합의에 따라 볼리비아 영토였고, [[구리]]와 [[초석]], [[은]] 같은 중요 자원들이 많은 금싸라기 땅이자 볼리비아의 '''유일한 태평양 출구'''였다. 그러나 당시 남미 국가들이 다 그렇듯 모자란 인구로 개발이 어려웠고, 볼리비아는 이 지역 개발을 위해 칠레를 끌어들여, 1874년에 자국 내 칠레인 및 칠레 기업에 향후 25년간 무과세 혜택의 제공을 골자로 하는 조약을 체결했다. 그러나 1876년 볼리비아 내부의 군사 [[쿠데타]]와 뒤이은 경제혼란으로 돈줄이 궁하던 볼리비아는 1878년 안토파가스타 주의 칠레인 및 기업들에게 수출세를 부과했다. 이는 명백한 조약 위반이었고, 조약에 의거해 칠레인들이 세금납부를 거부하자 볼리비아 정부는 이들 자산에 압류조치를 폈다. 뒤이어 볼리비아가 안토파가스타와 수도를 잇는 [[철도]]를 개통, 안토파가스타 영유권을 굳히려 들자 칠레는 격분했다. 법적으로는 볼리비아 영토지만 개발은 사실상 다 칠레인이 했는데, 볼리비아가 개발만 다 시켜놓고 그대로 뺏어먹으려 한다는 인식이 커서였다. 더군다나 이 때 칠레도 경제가 나빠서 더욱 민감했다. 여기에 페루도 형제국이다시피 한 볼리비아를 적극적으로 지지했고[* 볼리비아와 페루 모두 잉카 문명의 적손, 후예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. 스페인에서 독립한 후에는 아예 국가를 통합하려고 국가 연합을 시도하기도 했으나 결국 칠레와 아르헨티나의 무력 저지로 인해 실패했다.] 두 나라는 칠레에 맞서는 비밀 군사동맹을 체결했다, 1879년 2월 14일 칠레군이 볼리비아를 공격하여 안토파가스타 주를 강점하면서 전쟁이 발발했다. 15년 전, [[친차 제도 전쟁]] 당시 스페인에 맞선 동맹군끼리 전쟁이 벌어진 것이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